지우에게
2021.10.10

너도 알지만 나는 대기과학자나 기상 관련 일을 하는 사람도 환경공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야. 그런데 뜬금없이 지구기온이 올라가는 것이 한 달 장마나 초대형 산불들과 어떻게 이어지는 지, 2050년이 되면 어디가 잠기고 누가 멸종하는지, 책을 찾고 기사를 읽고 정리해서 너에게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 별일이지? 나는 제트기류가 뭐고 영구동토층이 뭔지 관심 없고 그냥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말이나 지구환경이 더 버티지 못할 거란 이야기는 전문가나 학자들이 하면 되는 줄 알았어.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이야기하니까 세상이 달라지겠지. 나는 가끔 지나가다 그런 방송이나 기사를 보면 '아 진짜 심각하구나, 저렇게 심각하면 곧 바뀌겠지' 하고 고개 끄덕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더우면 에어컨 틀고 추우면 보일러 틀면서 일하느라 정신 없이 살았는데. '저렇게'가 아니고 '이렇게' 였다는 걸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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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 탄소발자국. GS칼텍스
석탄이나 석유로 만든 에너지 대신 다른 대체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으면, 우리도 모르게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방면에서 지구에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데 기여하게 돼.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소비재가 수확되고 추출되고 제조되고 수송되어 우리에게 오기까지 끊임없이 탄소발자국*을 남기기 때문이야. 그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쓰지 않고 돌아다니지도 않고 숨만 쉬면 탄소발자국을 안 남길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만들 때도 온실가스가 엄청 나왔을 거야.

*탄소발자국 : 인간이나 동물이 걸을 때 발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우리가 생활하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특히,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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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탄소발자국. 환경부 수도권대기환경청
‘1.5도’를 지키자고 외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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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성찰과 책임있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촉구한다. 환경운동연합. 2018.10.08
IPCC의 2021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금부터 당장 전지구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막는다고 해도 앞으로 20년간, 지구기온이 1.5도까지 상승할 거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어. 인간이 안전할 수 없기에 한계라고 정한 ‘1.5도 상승’이 2040년 내에 일어난다는 의미야. 온실가스는 한 번 방출되면 사라지지 않고 잔존하는 기간이 수백 년이래. 이미 방출되고 쌓인 온실가스들이 앞으로 20년간 만들어낼 결과겠지. 그리고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어. 공장을 돌리고 비행기를 띄우고 내연기관 차를 굴리고 가축을 기르고 축산 폐기물을 처리하고 쓰레기를 매립하고 하수처리를 하면서.

이대로 온실가스가 늘어날수록 지구의 복원력은 상실되고 인류는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텐데 말이야. 우리 열나고 아파서 병원 가면 검사하고 진단 받고,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게 확인되면 바로 수술을 하든 약을 쓰든 하잖아. '아 그럼 아픈 거 확인했으니 내년부터 약 써봅시다', '5년 뒤부터 약물 치료하고 안 되면 수술합시다' 이렇게 안 하잖아. 내년이든 5년 뒤든 그때까지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낄 텐데. 점점 고통이 심해질 텐데. 지구한테는 왜 그러고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고 살아갈 곳인데. 정말 당장 시급한 극약처방이 필요한 시점인데 말이야.


건강하지 않은 지구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원. 산소. 물. 식량. 거주지. 이런 필수 자원들은 지금까지 지구가 안정적으로 생태시스템을 유지해왔기에 마치 무한한 것처럼 활용 가능했어.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고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동안 인류는 산업화 이후 ‘성장’과 ‘발전’을 외치며 사회경제 분야의 거대한 성장을 이뤄왔고 이러한 성장은 인간 개개인의 두뇌와 근육의 힘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어. 지구의 에너지와 자원을 오남용하고 온실가스, 오염 먼지를 뿜어 대고 바다에 오염수를 방출하고 처리할 수 없는 쓰레기를 산처럼 쌓아두었기에 가능했던 거대한 가속 성장이었어.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성장만큼 지구는 파괴되어온 셈이야. 인간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할 때인 것 같아.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나은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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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더 알아보기. WWF. 2021.03.17
근데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더라. 내가 아무리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소비를 하고, 전기 에너지를 절약해서 쓰고, 물을 아껴 쓰고, 새옷, 새신발은 안 사고, 채식을 해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가 없더라. 거대한 위기고 커다란 문제라서 그런가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규모가 생겨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변화가 있으려면 그대로 살면 안 된다고 했던 말 기억나? 니 안에서 뭐라도 바뀌고 뭐 하나라도 바뀐 행동이 오늘 당장 있어야 조금이라도 달라진 내일이 있을 거 아니냐고, 그랬었잖아. 내가 불평, 불만만 하고 도대체 세상도 싫고 사람도 싫다고 방에만 쳐박혔을 때 말이야. 그때 니가 해준 말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있고, 이 편지도 쓰고 있어.

일단 관심을 두는 것부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안해 보려고 해. 관련 다큐를 본다거나 팟캐스트나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방법도 있고. 소비할 때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거나 식사의 메뉴를 바꿔볼 수도 있겠지. 더 크게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나 정책을 만드는 정부에 요구를 하는 방식도 있을거야. 지속가능한 미래를 선택하게 해달라고 말이야. 우리 각자가 선 자리에서 보이는 더 다양한 방식이 있을 테고.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으로만 두지 않고 행동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내자고.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더 나은 방식으로 마주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참고 자료
[도서]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RHK
[도서] 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동아시아
[환경부] 국가온실가스통계. 2020 국가온실가스 인벤토리
[기사] 그린피스. 지구 운명 담은 IPCC 보고서, 그리고 해결책 10가지
[기사] 중앙. 확 당겨진 온난화 마지노선 ‘1.5도’…이런 기후 재앙 훨씬 잦아진다
[기사] 중앙. 지구촌 곳곳에 경고등…패거리 정치로는 미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