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최초로 접한 ‘비거니즘’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는지
‘아 저런 사람이 있구나, 저런 사람도 존재하는구나’
‘비건은 조금 힘드네?'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친구 힘들겠다, 외식할 때 먹을 게 진짜 없구나’
비건 손님이 왔을 때 ‘굉장히 까탈스럽다’고 느꼈어요
제이디.
‘아 이 사람은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구나’하고 처음 인지한 건 대학 다닐 때였던 것 같아요. 정기적으로 다닌 학교 세미나 자리였는데 식사를 하게 되면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야채 피자를 꼭 시켰어요. ‘아 저분은 채식을 하시는 구나’ 그게 첫 기억이에요. 시선이 확 갔던 것 같아요. 거부감이 들거나 이상하진 않았고 ‘아 저런 사람이 있구나, 저런 사람도 존재하는구나’ 이 정도.
주변에 알리고 동기를 설명하고 비거니즘 실천을 시작했던 사람은 쏭이 처음이었어요. 시작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실천하는 걸 지켜보면서 ‘멋지다, 대단하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게 맞겠다’ 생각한 것 같아요. 초반엔 그다지 큰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머지 친구들하고 ‘우린 몰래 치킨 시켜먹을까’ 하고 장난도 쳤는데, 돌아보면 왜 그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생각이 들어요.
준가.
오스트리아에서 ‘워크 캠프’를 간 적이 있는데 모든 음식을 베지테리언식으로 제공하는 행사였어요. 거기에 '자신이 먹을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었어요. 제 입장에서는 먹는 걸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어요. 우린 학교 급식에도 고기 반찬이 늘 있고 그걸 안 먹으면 김치나 나머지 반찬 조금 먹어야 하고 남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잖아요. 이런 식단이 영양소가 골고루 갖춰진 식단이고 이렇게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본인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처음 본 거죠. 나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식단이 재미있었어요. 비건 버터, 비건 치즈 다 그때 접해 봤거든요. 대체품들은 생각보다 맛있었고 그렇게 3주를 지내니까 자연스러워졌어요. 고기를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이것도 맛있고 재밌다!’ 라고 느꼈어요.
이후에 캠프 끝나고 갔던 스페인 여행에서 룸메이트가 비건이었어요. 그 친구랑 이틀 정도 같이 다녔는데 끼니마다 식당을 선택하는게 어려웠어요. ‘비건은 조금 힘드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 이 친구 힘들겠다, 외식할 때 먹을 게 진짜 없구나’ 생각해보니까 캠프에서 만난 사람 중에 엄마가 비건이라 아이도 비건으로 먹이는 분이 있었어요. 저한테는 그게 굉장히 학대처럼 느껴졌어요. ‘이래도 되나?’ 혼란스럽지만 신기하기도 하고 비건은 진짜 주체적이고 대단하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함께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일단은 나랑 분리하는 측면이 컸던 것 같아요.
제이디.
쏭이 처음 비건 시작했을 때, 몰래 치킨 시켜먹을까 장난쳤다고 했잖아요. 돌이켜 보니까 그땐 완전한 동의가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기후환경 주제로 공부하다 보니 알면 알수록, 기후위기도 비거니즘도 시급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심각성이 동의가 되면서 제 안의 변화도 천천히 일어났던 것 같아요. 원래 타인이 다른 의견이나 가치관을 드러내도 배척하는 성향은 아니어서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했는데 그 이후에 저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일단 알아갈 수 있도록 문을 여는 게 중요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쏭.
뉴질랜드에 있을 때 비건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그땐 식당에서 일했으니까 주문을 받는데 베지테리언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일식당이니까 주로 스시나 카츠를 시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메뉴판 맨 밑에 있는 베지테리언 메뉴 주문을 자주 받았어요. 동시에 이 메뉴에 어떤 식재료가 들어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일도 많았어요. 원 메뉴에 본인이 먹을 수 있는 게 없으면 고기 대신 채소를 써서 만들어 줄 수 있냐고 요청도 하고요. 그럼 주방에서 쉐프님이 응용할 수 있는 선에서 두부나 야채를 활용해서 만들어줘요. ‘아 내가 먹을 게 없으면 그 식당을 못 가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요청할 수 있구나’ 처음 접했죠. 그래서인지 그 나라에는 글루텐 프리, 데어리 프리, 베지테리언 옵션이 어느 식당에든 갖춰져 있어요. 저는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밀가루를 잘 소화할 수 없는 몸이라는 걸 그 나라에 가서 비로소 자각하게 된 거죠. 어릴 때 계란 흰자가 너무 비려서 못 먹었는데 이걸 못 먹으면 세상에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먹어야 한다고 하니까 억지로 먹었던 기억도 났고요.
한편으론 홀직원으로서 비건 손님이 굉장히 까탈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세세하게 질문하고 요구하니까 저는 하나라도 빠트리면 메뉴가 잘못 나가는 거라서 긴장하게 되는데 역할 때문인지 비건 손님이 오면 평소보다 삐그덕거리고 그 손님이 식사할 때 항상 신경썼던 것 같아요. 잘못 들어간 게 있을까봐 먹다 불편한 게 있을까봐 주의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 외식할 때 제가 이것저것 질문하고 주문하면서 뭐 빼달라 뭐 넣지 말아 달라 요청하면 홀직원이 당황스러워 하고 긴장하는 게 이해가 가요. 그래서 되도록 편안한 무드를 만들려고 하는 편이에요.
준가.
무언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계란 먹는 거. 우유 먹는 게 꼭 필요하고 당연한 문화에서 우린 자랐으니까. 초등학교 때 우유급식 하잖아요. 튼튼해지라고. 우유를 마시면 설사하는데 남기면 절대 안 된다고 하고. 집으로 가져가는 것도 안 된다고 하고. 그런 문화에서 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걸 먹는 사람이 맞는거고, 안 먹는 사람은 틀린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제이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런 교육 문화가 문제였던 것 같네요. 정해진 기준이나 틀에 맞추려는, 닫힌 문화.
쏭.
맞아. 그런 식으로 개인간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