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이번 생은 망한 걸까.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이토록 깨끗하고 멋지고 당연하게 여겨지다니, 
이 막돼먹은 편리함에 답이 없어 보인다. 

지금 시대는 작심하고 물건을 버리도록 고안된 세상 같다. 
처음 일회용 종이컵이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차마 컵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사용했다. 

멀쩡한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다니,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당시 시민들은 쉽게 버리는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난감해진 제조업체는 ‘
제발 한 번 쓰고 좀 버리세요’ 라는 일회용 개념을 
우리 머리에 장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2page)
위에서 언급된 일회용 종이컵이 처음 나왔던 당시의 풍경은 그다지 먼 과거는 아닙니다. 2~30년 전만 해도 한 번 쓰고 버릴 것을 매번 소비하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지요. 동네마트부터 전통시장까지 모든 식료품과 생필품을 플라스틱으로 포장한 풍경도 그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플라스틱 시대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어디에나 플라스틱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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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려는 책『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의 저자는 이 세상의 기본값이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으로 세팅되어버렸다고 우려합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세상의 기본값을 변경하는 설계와 실천들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 대신 사람을, 관계를 더 자주 만나는 문화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수 만년 동안 모아둔 효율적인 원료로
썩지도 않는 물건을 만들어 잠시 쓰고 자연에 내다 버리고 있다




Q.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의 양은?

A. 1억 5천만 톤 (국가별 육류 소비량 1위를 차지한 중국의 한해 고기 섭취량 보다 2배 많다)


Q.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 중 플라스틱의 비율은?

A. 약 90%


Q. 바다를 떠도는 플라스틱 중 육지에서 온 플라스틱의 비율은?

A. 약 80%


Q. 바다에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의 양은?

A. 매년 1,270만 톤 (1분마다 쓰레기 트럭 한 대 분량씩 바다에 쏟아버리는 셈이다)


Q. 전체 플라스틱 공해 중 미세플라스틱이 차지하는 비율은?

A. 15~31%로 추정


Q. 한국처럼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 지구는 몇 개가 필요할까?

A. 3.3개


Q. 한국인이 하루 동안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은?

A. 탄소발자국 6,700톤 감소 = 기후변화 취약 국가의 어린이 45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Q. 한국인이 1년 동안 사용한 일회용 종이컵에 들어간 나무는?

A. 20년생 나무 2,300만 그루


저자가 책에 적어둔 Q&A 중 절반 정도의 질문을 옮겨봤습니다. 너무 거대한 숫자라 어림되지 않던 수치들이 괄호 안의 설명들로 조금은 구체화되기도 하고 여전히 막연하기도 한데요.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공기 중에 혹은 바다에 분해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지, 대체 어떻게 주워 담고 치울 수 있을지 막막한 기분이 들지만, 저자는 세상의 플라스틱 중에 절반이 한 번 쓰고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이라며, 일회용품이라도 줄여보자고 말합니다.


나에게 플라스틱 프리는 플라스틱 없는 삶이나 
지구를 구한다는 비장한 각오와는 조금 다르다. 

내겐 플라스틱 덩어리인 노트북도 필요하고 안경테도 필요하다. 

다만 비닐봉지나 일회용 컵, 수저, 빨대 등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는 살 수 있겠다 싶다. 
2002~2014년 사이 전 세계 플라스틱의 
45%는 ‘포장용’으로 사용됐다. 

그 다음이 건축용 19%, 소비자 제품 12% 순이다. 
즉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포장용만 어떻게 해도
 플라스틱 사용량의 절반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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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 'Plastic or Planet' 캠페인 영상 (출처 : 내셔널지오그래픽)
안전한 플라스틱이 있을까?

플라스틱이 어디에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플라스틱은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합니다. 원료인 석유를 정제할 때도, 공장에서 플라스틱 자재를 제조할 때도, 버려진 플라스틱을 태울 때도 대기오염물질과 미세먼지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자연 분해도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은 전 지구에 퍼져 있죠. 해양에는 미세플라스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바다가 플라스틱 수프라는 자조 섞인 태그도 생겼습니다.


환장하게도 플라스틱은 모든 곳에 있다. 
플라스틱 없인 지금처럼 대규모로 싸고 
빠르게 물건을 만들어낼 수 없다. 

생활은 편리하고 윤택해졌지만, 
이는 곧 어디에나 플라스틱에서 나온 
환경호르몬이 퍼져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과 먹거리를 섭취할 때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쓸 때, 
심지어 공기나 먼지를 들이마실 때도 환경호르몬에 노출된다.

몸에 흘러 들어온 플라스틱 성분 탓에 
인류도 조금은 플라스틱이 되어버렸다.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신생아 제대혈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300여개 
합성화학물질이 검출되었다.
(56page)


며칠 전 접했던 국제 뉴스에서는 인류가 한 번도 탐사를 성공하지 못했던 심해에 들어갈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여 마침내 내려갔는데 그곳에 이미 플라스틱 쓰레기가 먼저 도착해 있더라 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도처에 널린 플라스틱이 태양광에 노출되면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만날 때마다 메탄이라는 온실가스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합니다. 해양생태계에 스며든 미세플라스틱과 플라스틱이 있는 어느 곳에나 발생하는 환경호르몬, 온실가스까지. 사방에 널린 플라스틱 조각들이 인체에 유해한 동시에 기후위기에도 영향을 끼치는 겁니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삶

플라스틱은 인간에도 지구에도 해로운 탓에 하루 빨리 생산과 소비를 줄이고 이미 자연으로 떠내려간 것들을 주워담을 궁리를 해야할 것만 같습니다. 저자는 먼저 일회용품부터 줄여보자고 합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삶의 대척점에, 자신과 주변을 천천히 탐색하고 음미하는 시간, 아날로그와 핸드메이드를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문화, 소유한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와 내재적 가치를 중시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있다고 거듭 지금과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말합니다.

 책에는 플라스틱 프리 라이프를 위해 직접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한 '변화를 위한 연대의 기술'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물건도, 한 번 쓰고 버리지 않는 세상 만들기를 위한 플랜들. 함께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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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일회용품과 소모품을 줄이고 다회용 그릇을 사용하는 마르쉐 (출처 : 농부시장 마르쉐)
쓰레기 사회에서 살아남는 플라스틱 프리 실천법 (나 홀로)


국제적으로 열리는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에 참여하기

호주에서 알음알음 시작했지만 지금은 170여 개국, 수백만 명이 참여하고 있어요. 실천 아이템과 기간을 선택할 수 있으며 한 단계씩 도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합니다. 국내에도 개인이 실천을 선언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메이데이 챌린지'가 있다고 해요.



비닐봉지 없이 장 보고 플라스틱 없이 여행하는 '플라스틱 프리 일상 SNS에 기록'하기

해시태그로 '플라스틱챌린지'와 '용기내' '제로웨이스트' 등을 활용하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거대한 물결에 동참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챌린지도 볼 수 있다고 해요.

 

나의 '쓰레기 다이어리' 쓰기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매일 한 번씩 우리 집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기록해보는 활동이에요. 생활에서 건져 올린 증거로 변화의 지점을 찾아볼 수 있고, 꾸준히 하면 어떤 쓰레기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 생활 패턴을 파악할 수 있어서 쓰레기의 절대적인 양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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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1 플라스틱어택 참가자들 (출처 : pfree.me/플라스틱어택/)
쓰레기 사회에서 살아남는 플라스틱 프리 실천법 (여럿이서 함께)



 ‘플라스틱 파파라치’

 팀을 이뤄 선정한 카페에 방문하고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실태를 모니터링하는 방식이에요. 들어가서 조사하고 증거를 사진으로 찍는 거죠. 이 결과를 기업과 환경부에 전달해서 시정을 요구하는 거죠. 저자가 파파라치 활동을 시도한 2018년에는 묻지 않고 일회용 컵을 주는 곳이 87%, 게다가 조사 매장의 40% 가까이가 아예 다회용 컵이 없었다고 해요.



 ‘플로깅(줍깅)’

 길가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고 주인을 찾는 활동으로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방식이에요.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들어가 어망이나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는 '프로젝트 어웨어'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빨대를 수거하는 '스트로클러'도 있다고 해요. 쓰레기를 모아 브랜드를 기록하고 데이터화하기도 하고 #IsThisYours? 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기업을 소환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나아가기도 한다고 해요.



 ‘우리동네 플라스틱 프리 지도 만들기’

 일회용품 안 쓰는 배달 음식점이나 텀블러를 가져가면 할인이 되는 동네 카페, 제로웨이스트 샵 등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 보는 거예요. 구글맵이나 카카오맵을 통해 쉽게 만들어볼 수 있다고 해요. 참고할 만한 지도는 일회용 빨대와 컵을 쓰지 않는 카페를 표시한 '플라스틱없다방' 일회용품 없는 가게와 전통시장을 표시한 '플라스틱없을지도'가 있어요.



 ‘플라스틱 어택’

 돈 내고 쓰레기 사고 싶지 않으니 포장 좀 줄이라고 요구하는 활동이에요.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같이 사게 되는 포장재를 모아서 돌려주면서 시스템을 바꿔줄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이죠.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국제적으로 하고 있어서 '플라스틱 어택 글로벌 페이스북'에 틀어가면 일정을 확인하여 참고할 수 있다고 해요.



+ 챌린지의 단계별 안내와 더 많은 챌린지 예시는 책의 세 번째 파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


위와 같은 활동이나 사소한 습관의 실천을 통해 직접적으로 삶을 바꾼 개개인이 있어야 사회가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이 모두를 짊어지고 다니기는 너무 무거운 데다 거대한 문제지요. 혼자서는 해결할 수도 없고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거대한 규모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개인 단위의 삶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통한 인프라가 형성되어야 사회적인 물결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세계의 무게가 버겁다.
이 버거움을 덜어내 덕후가 아닌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것,
시스템이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덕후가 아닌 사람들도 기꺼이 동참할 수 있게 
세상의 기본값을 변경하는 설계들. 
네 곳곳에 자리한 중고 및 수리 가게, 포장재 없이 
알맹이만 파는 제로 웨이스트 샵, 
장바구니와 식기를 대여해주는 시장과 축제, 
애초에 재활용하기 쉽게 만들어진 물건들, 
강력한 플라스틱 규제와 대안 지원 등 인프라가 깔려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적 실천은 사회적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전환이 된다.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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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뜨는 운동 플로깅, 지구 위해 달리는 사람들 (출처 : KBS NEWS 2018.07.14)
일회용 플라스틱의 반대는 서로의 삶에 말을 걸고
시간을 들이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그저 쓰레기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의 속도를 늦춰 보통의 일상과 다른 사람의 안녕과 
지구의 건강을 챙기는 여정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는 빨리빨리와 효율성에 잠식된 
우리 사회의 시간을 늦추고,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한 사회를 요구하며 
따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삶의 방식과 속도를 원한다.
그리고 그 길은 세상의 어떤 물건도,
어느 누구도 쓰레기로 취급하지 않는 삶에 있다.
(47page)


저자가 기억을 되살려 꼭꼭 눌러 썼을 글을 읽으며, 식료품이나 생필품이 떨어졌을 때 반찬통과 장바구니를 들고 동네 시장으로 향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비닐봉지를 쓰지 않기 위해 에코백과 반찬통을 챙겨온 저자에게 덤을 더 못줘서 아쉬워 하는 가게 사장님들과 장바구니로 대여할 에코백을 기증하고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는 문화를 뿌리 내리기 위해 기꺼이 수고를 들이는 동네 사람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사고 파는 풍경이 저자가 용기와 실천을 통해 바꿔온 그곳, 시장처럼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온기가 느껴지고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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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필샵 알맹상점에서는 포장재 없는 알맹이만 살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MEDIA SK)
‘물건 이야기’의 저자 애니 래너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행동이나
잘못된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망가진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취하고-만들고-버리는’ 치명적인 시스템이 야기한 문제인 것이다.”

백번 맞다. 

그런데 개인이 어떻게 시스템을 바꾸지?
답은 의외로 쉬운 데 있다.
세상의 비주류와 약자는 혼자가 아닌 ‘
우리’로 존재할 때 부당한 기준을 바꿀 수 있다. 
그 우리는 개인의 행동과 실천에서부터 시작한다. 
개인의 진정성이 근본을 떠받치지 않는 한
사회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39-40page)


책을 읽다 멈출 때마다 사방에 자리한 플라스틱이 보였습니다. 체온이 있는 피사체만 적색으로 보이는 적외선 안경을 낀 것처럼 말이지요. 밥을 하려고 주방에 갔더니 식기류부터 텀블러, 반찬통까지 플라스틱 천지, 커피를 내려 다시 책상으로 돌아오니 컴퓨터, 독서대, 필기도구까지 플라스틱 천지.

 그래도 이것들은 그나마 다회용이니까 라고 위안을 찾아보지만, 주말마다 분리배출을 하러 나가면 산처럼 쌓여있는 비닐과 플라스틱, 스티로폼. 일 때문에 자주 들르던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길에, 높다란 건물 뒷편 공터에 수거되지 않은 폐기물 사이사이로 낙엽처럼 쌓여있던 담배꽁초와 군데군데 겹겹이 포개져있던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 그런 장면들을 마주할 때마다 기운이 빠지곤 했습니다.

 '나 하나 애쓴다고 바뀔까'

 때문에 저자가 소중히 적어둔 문장에서 힘을 얻습니다. 개인의 행동과 실천에서부터 시작되고 서로서로 연결된 ‘우리’가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또렷한 의지가 담긴 문장. 혼자서 하다 보니 여럿이 모이게 되고 모여서 하다 보니 되더라, 조금씩 바뀌더라 하는 경험과 확신이 담긴 문장에서 위로와 응원을 얻습니다.

 '일단 우리라도 해보자'는 권유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책 정보 |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슬로비. 2019.